부산 왜관의 시작과 부산진성의 기억 그리고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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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sans339
- 작성일 : 25-12-0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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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왜관의 시작과 부산진성의 기억 그리고 도시의기원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이 도시가 전통의 통치 기반인 '동래'와 근대에 급성장한 초량 중심의 '부산'으로 갈려, 여전히 힘겨루기 중인지 의문이다. 옛 중심은 동래였다. 부산은 부산포, 부산진에서 유래했다는 게 통설이다.조선왕조실록에 1402년 富山(부산)이 등장하고, 성종 때인 1469년에 釜山(부산)으로 바뀐다. 그러면 '솥 모양의 산'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명확하게 단정할 만한 근거 사료는 희박하다.임진왜란으로 파괴되기 전 부산진성이던 증산(甑山)으로 보는 게 합당할까? 釜山古基(부산고기), 즉 부산의 옛터라 기록한 '1872년 부산진성 지방지도' 등 여러 기록에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의 증산공원이다. 부산진성공원 유래설도 있으나, 신뢰도는 낮아 보인다. ▲ 부산진성(1872년_지방지도)지도 맨 위가 부산진성, 왼쪽 중간이 두모포, 왼쪽 아래가 초량왜관이다. 부산진성 왼쪽 증산에 부산포 왜성의 흔적이 그려져 있고 '釜山古基(부산고기)'와 開雲鎭(개운진), 鄭公壇(정공단)이 보인다. 배가 정박되어 있는 선창 오른쪽에 '영가대'가 보인다. 네모난 부산진성의 한가운데에 萬公壇(만공단)과 그 위에 子城臺(자성대)라 기입되어 있다. 지도 아래 섬이 영도다.ⓒ 서울대학교_규장각_한국학연구원1905년 개통된 경부선 초량역이, 나라를 빼앗긴 1910년 10월에 거대한 부산역으로 재탄생한다. 일제가 부산역을 중심으로 섬에서 이주해 온 왜인을 위한 도시를 계획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근대도시 부산의 탄생이다.반대급부로 전통의 동래는 권위와 명성을 급격히 잃어간다. 근대화와 경제 중심에서 철저히 소외된 탓이다. 행정은 물론 교통과 상업, 금융과 산업 등에서 낙후를 면치 못한다. 지극히 의도적이며 왜곡된 도시화이고 차별화였다. ▲ 부산항부산진성과 부산포왜성이 있었던, 증산공원 정상에서 바라 본 부산항. 오른쪽 멀리 영도가, 왼쪽 중간에 부산진성공원이 보인다.ⓒ 이영천1490년 병선 정박과 수군, 물자를 보호하기 위해 약 950m 둘레로 증산에 진성을 쌓았다. 이때의 '부산진성'이 부산의 얼굴인 셈이다. 극성부리던 왜구의 침략을 방비부산 왜관의 시작과 부산진성의 기억 그리고 도시의기원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이 도시가 전통의 통치 기반인 '동래'와 근대에 급성장한 초량 중심의 '부산'으로 갈려, 여전히 힘겨루기 중인지 의문이다. 옛 중심은 동래였다. 부산은 부산포, 부산진에서 유래했다는 게 통설이다.조선왕조실록에 1402년 富山(부산)이 등장하고, 성종 때인 1469년에 釜山(부산)으로 바뀐다. 그러면 '솥 모양의 산'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명확하게 단정할 만한 근거 사료는 희박하다.임진왜란으로 파괴되기 전 부산진성이던 증산(甑山)으로 보는 게 합당할까? 釜山古基(부산고기), 즉 부산의 옛터라 기록한 '1872년 부산진성 지방지도' 등 여러 기록에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의 증산공원이다. 부산진성공원 유래설도 있으나, 신뢰도는 낮아 보인다. ▲ 부산진성(1872년_지방지도)지도 맨 위가 부산진성, 왼쪽 중간이 두모포, 왼쪽 아래가 초량왜관이다. 부산진성 왼쪽 증산에 부산포 왜성의 흔적이 그려져 있고 '釜山古基(부산고기)'와 開雲鎭(개운진), 鄭公壇(정공단)이 보인다. 배가 정박되어 있는 선창 오른쪽에 '영가대'가 보인다. 네모난 부산진성의 한가운데에 萬公壇(만공단)과 그 위에 子城臺(자성대)라 기입되어 있다. 지도 아래 섬이 영도다.ⓒ 서울대학교_규장각_한국학연구원1905년 개통된 경부선 초량역이, 나라를 빼앗긴 1910년 10월에 거대한 부산역으로 재탄생한다. 일제가 부산역을 중심으로 섬에서 이주해 온 왜인을 위한 도시를 계획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근대도시 부산의 탄생이다.반대급부로 전통의 동래는 권위와 명성을 급격히 잃어간다. 근대화와 경제 중심에서 철저히 소외된 탓이다. 행정은 물론 교통과 상업, 금융과 산업 등에서 낙후를 면치 못한다. 지극히 의도적이며 왜곡된 도시화이고 차별화였다. ▲ 부산항부산진성과 부산포왜성이 있었던, 증산공원 정상에서 바라 본 부산항. 오른쪽 멀리 영도가, 왼쪽 중간에 부산진성공원이 보인다.ⓒ 이영천1490년 병선 정박과 수군, 물자를 보호하기 위해 약 950m 둘레로 증산에 진성을 쌓았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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